5. 커피농민조합 : 지속가능성

다음 날 새벽은 쌀쌀했다. 영상 6도. 우리는 인근 농민조합을 방문했다. 숲속으로 난 조그만 길을 따라 산을 오르내리고 숲속에서 조그만 마을을 만나기도 했다. 어른들은 무기력하게 앉아 있었고 서너 살 되어 보이는 아이들은 옷을 하나도 입지 않은 채로 맨발로 숲 속을 뛰어다녔다.

한참이나 숲을 헤치고 나가 우리는 산 중턱에 넓은 곳에 도착했고, 그곳은 농민조합의 공동 작업장이었다. 사람들이 땀을 흘리며 일하고 있었다. 그 곳엔 조금 더 자란 아이들이 많았다. 아이들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놀기도 하고 일을 거들기도 했다.

혹여 아이들도 일을 하는가 싶어 조합 지도자에게 물어보았다. 그는 대답하길 “이 아이들은 오후에 학교에 간다. 그래서 아이들이 오전에 자주 작업장에 놀러 온다. 어떤 지역에선 소년과 소녀들이 커피농사에 참여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들의 농민조합에서 아이들이 저임금노동을 하거나 착취를 당하는 일은 없다”고 했다. “농민조합은 농민들에게 수확기까지 아이들의 학비와 최소한의 식량과 식용유를 보장하기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했다. 더 자세히 물어보기는 힘들었다.

내가 경상북도 북부지역 산골에서 자라던 70년대 초반이 생각났다. 때로 산속에 사는 친구들의 집에 놀러가기도 했다. 그 때 학교에 다녀온 내 친구들은 부모님의 일을 거들어 주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소먹이를 하러 가거나, 땔감을 줍기 위해 산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아동노동착취의 한계는 어디까지 인가? 그 때 내 친구들과 형들은 착취당한 것인가?

작업장에서 조금 떨어진 커피 밭에 갔는데 산비탈의 조금 평평한 곳이었다. 그 곳엔 그 밭에서 농사를 짓는 분이 계셨다. 그런데 그분은 양복을 입고 계셨다. 그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이 분명했다. 더운데 커피 밭에 양복이라니. 그는 아마도 우리가 손님으로 온다 해서 예의를 다 하려 양복을 입고 그 비탈을 걸어오셨던 것이었음이라 나는 송구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하며 커피 밭을 다니다 뜬금없이 나는 그 커피 밭의 신사에게 아이가 몇이냐고 물었다. 그는 원래 열한명의 아이가 있었고 그중 위로 두 아이를 잃었다고 했다. 농민조합에 가입하고나서 아이들을 더 이상 잃지 않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따라오던 일행이 영어로 통역을 해주고 있던 터라 아는 좀 더 자세하게 조합에 대해 질문했다. 암하릭(오모로족의 고유언어로 에티오피아의 공식언어), 영어, 한국어가 섞여 이야기하는 터라, 더 정확히는 나의 영어가 부정확해서 정확히 알 수는 없었으나, 그들의 말은 이러했다. “농민조합은 커피대금을 세번에 나눠서 수확기, 커피 판매시와 이듬 해 농사시작 때에 지급한다. 조합의 수익70% 이상이 농민에게 돌아가며 조합 수익 30% 중 일부는 흉작일 때를 대비하는데 아이들의 학비와 식량, 식용유를 지급한다. 나머지는 조합의 임금과 커피 가공시설을 재투자하는데 쓴다”고 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나는 또 “그런 룰들이 잘 지켜지냐”고 물었다. 그들은 대답하기를 “사실 인근의 어떤 농민조합지도자가 운영을 잘 못해서 그 조합이 파산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조합원들이 재건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조합들은 잘 운영된다”고 했다. 그럴 수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유쾌하게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그 조합을 떠나 Dila로 왔다.

Dila는 이르가체페의 소도시이다. 그 곳에서 많은 커피거래가 이뤄지고 가공도 이뤄진다. 그 곳에서 우린 어느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셨다. 차들이 오가고 많은 사람들이 북적대는 곳이었다. 그 곳에서 잠시 쉬고 우리는 아디스아바바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그들의 집과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으나 하릴없는 것들이었다.

딜라 시내

khat 다발

이르가체페에 가는 길에서도, 아디스아바바로 돌아 가는 길에도 길가에는 많은 아이들이 무언가를 팔고 있었다. 개중에는 먹을 걸 파는 아이도 있었지만 많은 아이들이 나무 이파리 같은 걸 묶어서 팔고 있었다. 일행에게 무얼 파는 거냐고 물어보자, 그들은 “카트(Khat)”라고 대답했다. 카트는 예멘과 에티오피아, 지부티, 소말리아에서 자생하는 식물로 이 지역의 기호식품이다. 잎을 날로 씹어 먹는데 Cathinone이라는 알칼로이드가 함유되어 있다. 카티논은 암페타민과 유사한 구조로 환각작용이 있고 정신질환을 유발할 수도 있다, (나무위키에서 인용)

물론 카트는 환각물질이 함유되어 있어서 건강에 해가 되기도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농업에 미치는 영향 때문이다. 카트는 재배에 많은 물을 필요로 하여 수자원을 고갈시키기도 하고, 다른 작물보다 고수익이고, 심은 해에 바로 수확이 가능하여 농민들이 다른 농사를 포기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일행 중에 한 분은 ‘카트 산업은 에티오피아 커피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하셨다. 그 이유는 국제커피가격이 지속적으로 낮은 가격을 형성하면 농민들은 커피나무를 베어내고 카트를 심어 즉각적인 수익증대를 추구하므로 커피농업의 지속가능성을 저해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체로 선진국의 커피회사나 커피 소비자는 싸고 좋은 커피를 찾으려 애쓴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낮은 가격만을 찾다 보면, 커피생산자에게 돌아가는 몫이 줄어들게 된다. 그러면 농민들의 생계가 어려워지고,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농민들은 결국 커피나무를 베어내고 그 자리에 카트를 심게 된다. 여기서 비극이 시작된다. 그러나 진실로 비극이 시작되는 시점은 어느 날 텔레비전에 나오는 아프리카 구호광고를 보는 바로 그 사람이 선택한 커피 한 잔에서 시작된다. 싸고도 좋은 커피는 장기적으로 환상이다.

우린 늘 말한다. ‘탐욕의 끝은 파멸이다.” 거시적으로 또 장기적으로 옳은 말이다. 하지만 탐욕을 누르는 선의의 힘은 자기자신의 일상- 자기 자신의 소비, 자신의 가게, 자신의 직장…- 에 직결될 때 매우 약해지기 마련이다. 누구나 좋은 커피를 더 싼 값에 마시길 원한다. 그걸 탓할 수는 없다. 원래 인간은 그런 존재이니까. 어떤 사람이 선의로 비싼 값의 커피를 한두 번 사줄 수는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다른 누구에게 늘 그런 소비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폭력이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일 수도 있다.

사람의 마음을 이기적인 것과 이타적인 것, 둘로 나눈다면 아마도 첫번째 것이 절반은 넘을 것이다. 그런 존재인 것이다, 인간은 그걸 인정하고도 서로의 몫을 넘보지 않고 같이 살아 내야한다.
그 방법은 무엇일까?

어떤 미국 커피회사는 기술적인 해결방법을 추구한다. 그들은 농민이나 농민조합과 소규모 로스터리 회사와의 직거래를 제시한다. 인터넷을 통해서. 좋은 방법이다. 물론 산지 농민이 인터넷과 국제물류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어떤 단체들은 소비자의 마음에 호소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들은 윤리적 소비를 목표로 한 많은 인증제도들-Fair Trade, Rainforest alliance, UTZ, Organic 등등-을 제시한다. 물론 좋은 일이다. 그러나 윤리적 소비제품은 더 비싸고, 선택이 더 한정적이다. 또 한가지 문제는 이러한 인증의 절차에 들어가는 비용을 대부분 농민 측이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더 높은 가격을 받기는 하지만 그 이윤 중 일부는 서구 선진국가의 인증기관의 유지비용으로 사용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선진국 소비자는 더 많은 가격을 치르고 공정무역 커피를 사 먹어야 한다. 그럼 돈이 없어 비싼 공정무역커피를 사 먹지 못하는 커피소비자는 비윤리적인가? 우리는 다시 생각해봐야한다. 어떤 논문의 제목처럼 ‘공정 무역은 공정한가? ( Is Fair trade Fair?)’

조합과의 직거래 (Direct Trade)도 좋은 해결책이기는 하다. 물론 여기에도 조합 지도자의 부패나 운영의 실패 등등 많은 문제가 있다.
선진국의 소비자는 어떤 선택을 하든 위의 경우에 반드시 저개발국의 커피농민에게 도움이 된다. 어떤 문제점을 이유로 그런 노력들을 폄하해선 안된다. 너무 쉽게 타협하지는 말자. 그리고 많은 유혹을 물리치고 그런 선택을 하시는 한잔의 구매자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들이 선택이 가난한 아버지가 자신의 노동으로 아이를 기르고 교육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니까. 하지만 인증 받은 비싼 커피를 사 먹을 수 없는 보통의 소비자의 선택도 존중되어야 한다. 그 것도 그에겐 최선의 선택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