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아프리카로

오늘 우연히 책상위에 얹혀져 있는 카드에 눈길이 갔다. 아프리카에서 온 크리스마스 카드들 .

Nuguse, Tamir, Mosse, 이런 낯선 이름들과 카드들을 받으며 그 아이들의 모습을 생각하려 하지만 잘 되진 않는다.

10년이나 지난 기억들을 더듬어 보려 한다. 그때 그 아이들은 이미 많이 자라 청년과 숙녀가 되었으리라.

나는 2010년 월드비전 후원자로 에티오피아에 초대받았다. 별로 한 일도 없는데 초대해 주신 점에 대해 지금도 감사하다. 이기회를 빌어 월드비젼 김동휘 팀장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에티오피아로 가는 길은 참으로 멀었다. 그 당시만 해도 직항이 없어서 인천에서 방콕으로 가서,케냐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타고, 케냐 나이로비공항에서 6시간을 기다려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케냐 나이로비 공항에 비행기를 기다릴 때 아프리카 대륙에 처음 온 나는 긴장했다. 그러나 그들을 바라보는 시간이 늘어남과 같이 긴장도 조금씩 풀어졌다. 피부색도 조금씩은 다르고, 생김새도 조금씩 달랐다. 물론 말도 조금씩 다르고 표정도 참 다양했다.

스무 시간이 넘게 걸려 도착한 아디스아바바 공항은 시원했다. 넓은 고원지대에 위치한 탓으로 눈도 시원하고 바람도 시원했다. 머릿속에 새겨져 있던 있는 아프리카의 모습과는 달랐다. 멀리 도시의 모습이 보이고 사원의 모습도 보인다.

마중 나온 현지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호텔로 갔다. 시가지는 조금 촌스러웠지만 여느 저개발국에 비해 괜찮은 편이었다고 기억된다.

2. 아디스아바바의 인상

그날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와 젊은 농학박사는 산책을 나갔다. 도시에 어둠이 들고 백열등이 길가에 점점이 켜지는 시간, 우리는 길을 따라 천천히 걷고 있었고 바람은 시원했다.

한참을 걷고 있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니, 우리 뒤엔 예닐곱살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들 두 명이 따라오고 있었다. 두 명의 아이들, 백열등아래 검은 천진한 얼굴과 하얀 이, 큰눈이 빛났다. 내가 지갑을 꺼내길 기다렸던 모양이다. 무심코 지갑을 꺼내려 하니 동행한 젊은 농학박사가 막았다. “돈을 주면 안됩니다. 돈은 어른들에게 뺏기고 아이들은 배고픔을 해결하지 못합니다.” 차라리 바나나를 사서 주자고 했다. 우리가 두 아이를 데리고 과일가게를 찾아가는 잠시 동안에 아이들은 8-9명으로 늘어났다.

우리는 충분한 바나나를 샀고, 아이들에게 나눠 주고 호텔로 돌아왔다. 마음이 무거웠다. 그땐 나도 젊었고 이성이 감정을 이기기 힘든 나이였다. 호텔로 돌아온 나와 젊은 농학 박사는 깊은 밤까지 가난에 대해 이야기하였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니 부질없는 감정과잉이 아니었던가 한다.

여정은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시작되었다. 일행은 나와 한국에서 파견된 농학박사 한 분, 월드비젼의 현지 책임자 두 분과 운전수, 그렇게 다섯이었다. 그 분들 이름을 다 기억하지 못함을 용서해 달라. 지금은 “모세’라는 운전수의 이름만 기억이 난다.

아디스아바바에서 Yirgacheffe County까지는 4-5시간이 걸린 것으로 기억된다.

도시를 벗어나자 넓은 초원지대가 계속되었다. ‘아! 여기가 사바나구나’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2차선 도로를 따라 거의 직선으로 달려가는 길은 잘 닦여져 있었으나 차가 속도를 내지는 못하였다. 길 가 초원에서 동물들이 차를 향해 달려드는 일도 있고, 농민들이 길 위를 소나 염소를 몰고 가기도 했기 때문이다. 교통사고를 목격하기도 했다. 같이 간 현지 스탭이 말하길, 농민들은 자동차의 속도에 익숙하지 못해 무리하게 길을 건너다 사고를 당하는 일이 자주 있다고 한다.

우리는 AWASA의 어느 호숫가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태양은 뜨거웠고, 꽃은 붉었다. 아름다웠고 어젯밤의 일로 무거운 마음도 풀렸다. 망각은 참 편리하다. 망각이 없었다면 여기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지옥일 것이다.

점심을 먹고 이디오피아의 식량부족문제에 대해 우린 오랫동안 이야기했다. 우리가 가는 길 옆에 제법 큰 호수들이 많았다. 하지만 관계수로가 되어 있지 않아 농민들은 늘 가뭄에 시달린다고 했다. 어느 호수를 지나 갈 때 내가 큰 호수 옆에 비닐하우스가 보이는데 무엇을 기르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인도인들이 만든 비닐하우스로 그 안에선 유럽으로 수출하는 꽃을 기른다고 있다. 내가 비닐하우스엔 대형펌프가 있을 터인데, 물을 나눠주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나눠주지 않는다고 물었다. 차 안엔 한참동안 침묵이 흘렀다.

이디오피아 사람들은 스스로를 ‘시바여왕의 자손’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아프리카정교와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이 대다수이다. 사람들은 매우 점잖으면서도 유쾌했다. 고유의 종교, 고유의 언어와 문자(암하릭)를 지키고 사는 사람으로서 자존감이 높아 보였다. 남자는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여자들은 키가 컸다.

한 사람이 자존감을 지키고 살아가는데, 교육, 문화와 감정 등등 많은 것이 필요하지만 경제적인 조건을 뺄 수는 없다. ‘그들을 가난에 빠지게 한 건 무엇일까. 그들이 가난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무었일까’ 등등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었다. 부질없이… 나는 그때 내 한 몸도 지키기 힘든 상황이었다.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시작된 경제위기가 전세계를 휩쓸고 지나간 시기였던 것이다.

여하튼 이디오피아 남자들은 다정다감하다. 친절하지만 진중하다. 그들은 만날 때와 헤어질 때 그들 고유의 인사법으로 예의를 다했다. 오른손을 팔씨름하듯이 마주잡고 서로의 오른쪽 어깨를 맞대고 등을 두드린다. 그들과 인사할 때 나는 안도를 느꼈다.

3.이르가체페- Washed Yirgacheffe

이르가체페에 도착하니 3시정도였던 것 같다.

이르가체페는 세상에서 가장 다양하고 빛나는 커피를 재배하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이르가체페(우리가 흔히 에가체프라 부르는) 상업용-Conventional- 등급만 아니라, 전 세계 커피애호가들이 사랑하는 Konga, Adado, Idido, Koke, Kochere, 등등 이름을 다 헬 수 없는 Specialty Coffee 들이 생산되는 고급 커피의 고향 같은 곳이다. 매년 동아프리카 커피 Expo에는 이 곳의 커피들이 항상 상위등급에 랭크된다.(https://afca.coffee/afca-programs/afca-taste-of-harvest/)

나는 협동조합으로 운영되는 농장들을 우선적으로 방문해 보고 싶었고, 그들은 두 곳의 농장을 소개했고 우선 한 곳을 그날 오후 방문하였다. 오후에 방문한 농장은 산 중턱에 위치해 있었다. 위압적이지 않고 안온한 산이었다.

산속에 포근하게 안겨 있는 작업장은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펄퍼(커피 체리에서 과육을 벗겨내는 기계), 발효 수조, 아프리카식 건조테이블이 각각 제자리에 잘 앉아 있는 곳이었다.

오후의 햇빛은 강렬했고 하늘은 그렇게도 맑았다. 사람들은 분주히 일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내게 프로세싱(커피체리를 가공해 그린빈으로 만드는 공정)을 보여준다고 했다. 프로세싱은 커피의 맛과 품질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 아무리 종자가 좋고 토양과 기후가 좋아도, 농부들이 농사에 정성을 들여도, 프로세싱이 좋지 않다면 커피는 결점을 드러낸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사람들이 매일 아침에 나가 손으로 커피를 딴다. 그렇게 딴 커피를 즉시 널어 말리거나 가공에 들어 가지 않으면 커피 체리의 과즙이 내부로 침투해서 상하거나 썩을 수도 있다. 커피의 품질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농부들은 새벽에 커피를 따고 그날 하루가 가기 전에 해야 하는 일들이 Processing인 것이다.

프로세싱은 크게 두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물을 사용하지 않고 햇빛에 말리는 Dry process(Natural)이고, 다른 하나는 과육을 벗기고 물에 씻어서 발효를 거쳐 뮤실러지를 제거하고 말리는 Wet Process(Washed)이다. 물론 Pulped Natural, Honey Process, Non-aerobic process 등등 새로운 프로세싱 방법들이 계속 생겨나 품질을 높이기도 하지만 모두 위의 두가지 프로세싱의 변형이다, 기본적인 것은 이 두가지 방법이다. 태양과 물, 이 커피 가공의 기본요소인 것이다.

태양은 어디나 고르게 비추지만 물은 있는 곳과 부족한 곳이 나뉜다. 아마도 물이 인간이 먹고도 남아 커피가공에 쓰일 정도로 풍부한 지역은 Washed coffee를 생산하고 물이 부족하면 Sun Dry를 하는 건 아닌가 한다. 커피가공에 물을 사용하면 커피체리에 함유된 알칼로이드가 물에 섞여 인간이 먹기 부적합하게 된다. 그래서 커피산지에서 물은 재배와 가공 모두에 중요하다. 고산지대에서 식수확보에 문제가 없는 한도에서 Washing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커피체리

농민들이 가져온 커피의 무게를 다는 모습

Dry Process 중에도 Sun Dry-Natural은 체리를 따고 햇빛이 잘 드는 곳에 말리면 되지만, Pulped Natural은 일정한 장비와 시설을 필요로 한다. Wet process는 말할 것도 없이 많은 장비와 시설을 갖추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품질이 높아져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시설은 많은 돈이 필요해서 농가마다 갖추기는 힘들다. 기계장비와 엔진 또는 전기, 발효수조, 세척시설, 건조시설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정 자본을 가진 수출사나 농민조합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에티오피아에선 농민조합의 역할이 크다.

농민조합은 조합 수익 중 일부를 적립하기도 하고, 선진국의 커피회사들의 도움을 받아 Washing Station을 마련하기도 한다. 우리가 방문했던 곳은 미국의 Royal Coffee의 도움을 받아 Washing station을 마련했다고 했다.

수확된 커피체리를 선별하는 모습 (이르가체페, 에티오피아)

이미 말한 대로 Sun Dry는 커피 체리를 따자 마자 햇빛에 쐬어 건조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커피 고유의 맛과 향을 강하게 나타내는 장점도 있지만 결점두가 많아지거나 너무 거친 맛을 나타내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커피생산지를 방문해보면 Washing은 하지 않지만 먼저 펄핑(체리에서 과육을 벗기는 작업)을 하고 뮤실러지(과육내부에 투명하고 약간 딱딱한 물질)이 남아있는 상태로 햇빛에 말리는 것이다. 이런 Process를 Pulped Natral이라고 하고 , 이 방법을 변형하여 과즙의 단맛을 생두에 침투하게 만드는 방법을 Honey Process라고 한다.

Wet Process는 커피 체리가 수확되면 그날 이내로 펄핑(회전하는-돌기가 있는 -두개의 원통사이로 커피 체리를 통과시켜 과육을 벗겨내는 작업)을 하고 커다란 수조에 뮤실러지 상태로 발효시킨다. 발효통에서 일정 시간을 지내고 나면 커피의 뮤실러지가 발효되어 벗겨지게 된다. 끈적이는 뮤실러지가 벗겨지면 커피의 겉껍질이라 할 수 있는 Parchment상태의 커피빈이 나온다. 이 상태에서 파치먼트를 흐르는 물에 씻어내고, 잘 건조하면 우리는 노란 콩깍지에 싸여 있는 커피를 얻게 된다. 보통은 이상태로 창고에 보관하고, 주문이 와서 판매할 때 파치먼트를 벗겨내고(이과정을 Hulling이라 한다) 다시 포장하여 수출하게 된다.

Wet Processing에서 커피체리가 그린커피(생두)가 되는 과정은 아래와 같다.
1.갓 따낸 커피체리 2.커피 체리의 구조

3.펄핑 (Pulping: 커피체리의 과육부분을 펄프라하는데 , 이걸 벗겨내는 과정을 Pulping, 과육을 벗기는 기계를 Pulper라고 한다. 이과정에서 동력이 필요한데 전기가 없으면 엔진을 사용한다).

펄핑이 끝나면 뮤실러지 상태인 빈과 과육이 분리된다. 위의 그림에서 과육과 뮤실러지를 확인할 수 있다. 펄핑이 잘못되면 깨진 콩이 많이 나온다.

4. Fermentation(발효:)펄핑이 끝난 뮤실러지 상태의 커피 빈을 수조에 넣고 물을 채워 둔다.

발효의 시간은 기온, 물의온도, 뮤실러지의 성질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그 당시 그 곳에선 48시간정도 발효한다고 했다. 발효과정에서 썩은 콩이나 쉘빈, 벌레먹은 콩들은 위로 뜨게 되고 발효나 세척과정에서 제거된다.

시멘트와 벽돌로 만들어진 발효조

발효조에서 위로 뜬 결점두

5.Washing(세척) 48시간이 지나 뮤실러지가 발효되어 제거되면 발효조와 연결된 세척조에서 세척을 하게 된다.

세척은 흐르는 물에서 커피를 넣고, 물이 흐르는 반대방향으로 가래질을 하게 된다. 잘 익은 콩은 물보다 비중이 높아 가라 않게 되고, 결점을 가진 콩들은 가벼워 물위로 떠오르게 된다. 이때 여러 사람들이 나무로 만든 가래로 물이 흐르는 반대 방향으로 바닥을 밀면 좋은 콩들은 가래질에 따라 남게 되고, 결점두들은 물에 떠내려 가게 된다.
이때 많은 물이 필요하며, 가장 고된 노동이 요구된다. 이르가체페 농민들은 6-8명이 늘어서서 가래질을 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그것은 사자가 으르릉거리듯이 힘차고 어쩌면 숨가쁜 노동요였다..

가래질하는 농부들

물막이하는 소년

6. Drying(건조): 생산된 파치먼트상태의 커피를 말려 수분함량을 낮춘다(수출할 때 기준이 수분 12%내외)

건조하는 방법에 따라 편편한 바닥에 그냥 말리기도 하고, Patio Dry라고 지붕을 씌워서 말리기도하고, 아프리카처럼 나무로 테이블을 만들어 그 위에 말리기도 한다. 아래의 사진들은 African table Dry이다. 이 과정은 2주에서 3주간 계속된다. 아침에 커피를 널어 놓고 수시로 뒤집어 줘야하고, 저녁이 오면 거둬서 창고에 두었다가 다음 날 다시 같은 방법으로 14일정도 말린다. 건기에 보통 수확하여 말리지만 요즘은 기후변화로 건기에도 비가 오는 날이 생기면 커피는 수분을 다시 빨아들이고 품질에 이상이 생기기도 한다.

African table dry

7.보관, Hulling(파치먼트를 벗겨내고 그린빈 상태로 만드는 것), 포장

내가 방문한 농장에는 huller(파치먼트를 벗겨내는 기계)가 없다. 보통 훌링과 포장은 더큰 시설과 기계가 필요하다, 노오란 파치먼트를 벗겨내야 비로소 짙푸른 생두를 얻게되고, 이를 볶으면 우리가 아는 커피가 된다. Hulling은 껍질을 벗기는 일이지만, 보통 스크린 그레이딩(크기로 구분), 2차 건조, 포장, 검사 등이 연속해 이뤄지므로 보통은 항구가 있는 도시인근에서 이뤄진다. 에티오피아는 바다가 없어 에리트리아의 지부티항구를 통해 수출하는데, 훌링 이후의 시설들은 수도인 아디스아바바에 밀집되어있다.

4. Tazza D’oro: 숲속에서

저녁이 왔다. 우리는 숙소로 돌아가려 했으나 농민들은 자신들이 농사 지은 커피를 같이 마시자고 했다. 우리 일행은 그들이 숲속에서 커피를 만드는 모습을 지켜 보았다. 잘 말린 커피 한 웅큼을 약간 데워진 팬 위에 놓고 부지런히 볶는 모습은 흥미로웠다. 주위의 나뭇가지를 태워 낡은 팬을 데우고, 불을 높였다가 낮췄다 하면서도 부지런히 커피를 뒤집어 타지 않게 하려고 했다.

커피 특유의 향이 주위를 가득 채울 때, 그들은 커피를 잠시 식히면서 채프(Silver skin이라고도하는 마지막 얇은 막 같은 속 껍질)를 완전히 제거하고는 절구처럼 생긴 도구에 넣어 커피를 잘 부수었다. 그리고는 에티오피아 특유의 흙으로 빚은 검은색 호리병에 넣어 뜨거운 물과 커피를 잘 섞어 조금씩 조그만 잔(우리 약주 잔 크기의 흰 도자기로 된)에 나눠 조금씩 마셨다. 놀라웠다. Tazza d’Oro! 그들은 로스팅 기계나 커피도구 없이도 그렇게 훌륭한 커피를 볶아내고 추출해 냈던 것이다. 늘 좋은 기계를 탐 냈던 내가 부끄러웠다. 한국에 돌아와서 가스 불 위에 프라이 팬으로 커피를 볶아 보았으나 쉽지 않은 일이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는 겉 멋에 찌든 도시의 남자였던 것 같다. 신선한 생두가 있다면, 화기가 콩에 골고루 스며들게 하여 커피를 익히고, 물의 온도와 커피와 물의 비율을 맞춘다면 언제나 좋은 커피를 만들 수 있는 그들과 비교하여 나는 초라했다. 부끄러웠다.

원래 커피는 에티오피아 오모로족에겐 신성한 음료이다. 제사나 의식에 쓰이는 음료인 것이다. 향을 사르고 커피를 만드는 모습은 한편 엄숙하기도 했다. 이틀 뒤 아디스아바바로 돌아 오는 길에 우리는 점심식사를 하고 어느 레스토랑에서 커피 세러머니를 볼 기회가 있었다,. 에티오피안인의 주식은 인셋이라는 작물에서 만든 녹말 같은 것이다. 인셋은 바나나 같이 생긴 작물이라고 했다. 그걸 가공해 얻은 녹말을 반죽하여 넓고 둥그렇게 만든 인셋을 빵처럼 익히고 그 위에 고기나 채소를 조금 올려 여럿이 나눠 먹는다. 식사 도중에 우리는 커피를 준비하는 한소녀를 볼 수 있었고 그 광경은 조용하고 조금은 엄숙한 모습이었다.

어둠이 깊어 가는 숲길을 지나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시원했다. 산 위에 자리한 민박집 같은 곳이었다. 그 곳에서 식사를 하고 그 곳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가난하지만 다정하고 진지한 사람들이었다. 저개발 국가에 출장을 다니며 늘 느끼지만, 처음에 가난한 그들이 불쌍해 보이고 안스럽게 느껴지다가, 돌아올 즈음엔 그들이 가여운지 아니면 도시에서 일에 쫒기며 사는 우리가 가여운지 모르게 된다. 행복은 어디쯤 있는가?

5. 커피농민조합 : 지속가능성

다음 날 새벽은 쌀쌀했다. 영상 6도. 우리는 인근 농민조합을 방문했다. 숲속으로 난 조그만 길을 따라 산을 오르내리고 숲속에서 조그만 마을을 만나기도 했다. 어른들은 무기력하게 앉아 있었고 서너 살 되어 보이는 아이들은 옷을 하나도 입지 않은 채로 맨발로 숲 속을 뛰어다녔다.

한참이나 숲을 헤치고 나가 우리는 산 중턱에 넓은 곳에 도착했고, 그곳은 농민조합의 공동 작업장이었다. 사람들이 땀을 흘리며 일하고 있었다. 그 곳엔 조금 더 자란 아이들이 많았다. 아이들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놀기도 하고 일을 거들기도 했다.

혹여 아이들도 일을 하는가 싶어 조합 지도자에게 물어보았다. 그는 대답하길 “이 아이들은 오후에 학교에 간다. 그래서 아이들이 오전에 자주 작업장에 놀러 온다. 어떤 지역에선 소년과 소녀들이 커피농사에 참여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들의 농민조합에서 아이들이 저임금노동을 하거나 착취를 당하는 일은 없다”고 했다. “농민조합은 농민들에게 수확기까지 아이들의 학비와 최소한의 식량과 식용유를 보장하기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했다. 더 자세히 물어보기는 힘들었다.

내가 경상북도 북부지역 산골에서 자라던 70년대 초반이 생각났다. 때로 산속에 사는 친구들의 집에 놀러가기도 했다. 그 때 학교에 다녀온 내 친구들은 부모님의 일을 거들어 주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소먹이를 하러 가거나, 땔감을 줍기 위해 산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아동노동착취의 한계는 어디까지 인가? 그 때 내 친구들과 형들은 착취당한 것인가?

작업장에서 조금 떨어진 커피 밭에 갔는데 산비탈의 조금 평평한 곳이었다. 그 곳엔 그 밭에서 농사를 짓는 분이 계셨다. 그런데 그분은 양복을 입고 계셨다. 그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이 분명했다. 더운데 커피 밭에 양복이라니. 그는 아마도 우리가 손님으로 온다 해서 예의를 다 하려 양복을 입고 그 비탈을 걸어오셨던 것이었음이라 나는 송구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하며 커피 밭을 다니다 뜬금없이 나는 그 커피 밭의 신사에게 아이가 몇이냐고 물었다. 그는 원래 열한명의 아이가 있었고 그중 위로 두 아이를 잃었다고 했다. 농민조합에 가입하고나서 아이들을 더 이상 잃지 않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따라오던 일행이 영어로 통역을 해주고 있던 터라 아는 좀 더 자세하게 조합에 대해 질문했다. 암하릭(오모로족의 고유언어로 에티오피아의 공식언어), 영어, 한국어가 섞여 이야기하는 터라, 더 정확히는 나의 영어가 부정확해서 정확히 알 수는 없었으나, 그들의 말은 이러했다. “농민조합은 커피대금을 세번에 나눠서 수확기, 커피 판매시와 이듬 해 농사시작 때에 지급한다. 조합의 수익70% 이상이 농민에게 돌아가며 조합 수익 30% 중 일부는 흉작일 때를 대비하는데 아이들의 학비와 식량, 식용유를 지급한다. 나머지는 조합의 임금과 커피 가공시설을 재투자하는데 쓴다”고 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나는 또 “그런 룰들이 잘 지켜지냐”고 물었다. 그들은 대답하기를 “사실 인근의 어떤 농민조합지도자가 운영을 잘 못해서 그 조합이 파산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조합원들이 재건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조합들은 잘 운영된다”고 했다. 그럴 수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유쾌하게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그 조합을 떠나 Dila로 왔다.

Dila는 이르가체페의 소도시이다. 그 곳에서 많은 커피거래가 이뤄지고 가공도 이뤄진다. 그 곳에서 우린 어느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셨다. 차들이 오가고 많은 사람들이 북적대는 곳이었다. 그 곳에서 잠시 쉬고 우리는 아디스아바바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그들의 집과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으나 하릴없는 것들이었다.

딜라 시내

khat 다발

이르가체페에 가는 길에서도, 아디스아바바로 돌아 가는 길에도 길가에는 많은 아이들이 무언가를 팔고 있었다. 개중에는 먹을 걸 파는 아이도 있었지만 많은 아이들이 나무 이파리 같은 걸 묶어서 팔고 있었다. 일행에게 무얼 파는 거냐고 물어보자, 그들은 “카트(Khat)”라고 대답했다. 카트는 예멘과 에티오피아, 지부티, 소말리아에서 자생하는 식물로 이 지역의 기호식품이다. 잎을 날로 씹어 먹는데 Cathinone이라는 알칼로이드가 함유되어 있다. 카티논은 암페타민과 유사한 구조로 환각작용이 있고 정신질환을 유발할 수도 있다, (나무위키에서 인용)

물론 카트는 환각물질이 함유되어 있어서 건강에 해가 되기도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농업에 미치는 영향 때문이다. 카트는 재배에 많은 물을 필요로 하여 수자원을 고갈시키기도 하고, 다른 작물보다 고수익이고, 심은 해에 바로 수확이 가능하여 농민들이 다른 농사를 포기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일행 중에 한 분은 ‘카트 산업은 에티오피아 커피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하셨다. 그 이유는 국제커피가격이 지속적으로 낮은 가격을 형성하면 농민들은 커피나무를 베어내고 카트를 심어 즉각적인 수익증대를 추구하므로 커피농업의 지속가능성을 저해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체로 선진국의 커피회사나 커피 소비자는 싸고 좋은 커피를 찾으려 애쓴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낮은 가격만을 찾다 보면, 커피생산자에게 돌아가는 몫이 줄어들게 된다. 그러면 농민들의 생계가 어려워지고,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농민들은 결국 커피나무를 베어내고 그 자리에 카트를 심게 된다. 여기서 비극이 시작된다. 그러나 진실로 비극이 시작되는 시점은 어느 날 텔레비전에 나오는 아프리카 구호광고를 보는 바로 그 사람이 선택한 커피 한 잔에서 시작된다. 싸고도 좋은 커피는 장기적으로 환상이다.

우린 늘 말한다. ‘탐욕의 끝은 파멸이다.” 거시적으로 또 장기적으로 옳은 말이다. 하지만 탐욕을 누르는 선의의 힘은 자기자신의 일상- 자기 자신의 소비, 자신의 가게, 자신의 직장…- 에 직결될 때 매우 약해지기 마련이다. 누구나 좋은 커피를 더 싼 값에 마시길 원한다. 그걸 탓할 수는 없다. 원래 인간은 그런 존재이니까. 어떤 사람이 선의로 비싼 값의 커피를 한두 번 사줄 수는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다른 누구에게 늘 그런 소비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폭력이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일 수도 있다.

사람의 마음을 이기적인 것과 이타적인 것, 둘로 나눈다면 아마도 첫번째 것이 절반은 넘을 것이다. 그런 존재인 것이다, 인간은 그걸 인정하고도 서로의 몫을 넘보지 않고 같이 살아 내야한다.
그 방법은 무엇일까?

어떤 미국 커피회사는 기술적인 해결방법을 추구한다. 그들은 농민이나 농민조합과 소규모 로스터리 회사와의 직거래를 제시한다. 인터넷을 통해서. 좋은 방법이다. 물론 산지 농민이 인터넷과 국제물류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어떤 단체들은 소비자의 마음에 호소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들은 윤리적 소비를 목표로 한 많은 인증제도들-Fair Trade, Rainforest alliance, UTZ, Organic 등등-을 제시한다. 물론 좋은 일이다. 그러나 윤리적 소비제품은 더 비싸고, 선택이 더 한정적이다. 또 한가지 문제는 이러한 인증의 절차에 들어가는 비용을 대부분 농민 측이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더 높은 가격을 받기는 하지만 그 이윤 중 일부는 서구 선진국가의 인증기관의 유지비용으로 사용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선진국 소비자는 더 많은 가격을 치르고 공정무역 커피를 사 먹어야 한다. 그럼 돈이 없어 비싼 공정무역커피를 사 먹지 못하는 커피소비자는 비윤리적인가? 우리는 다시 생각해봐야한다. 어떤 논문의 제목처럼 ‘공정 무역은 공정한가? ( Is Fair trade Fair?)’

조합과의 직거래 (Direct Trade)도 좋은 해결책이기는 하다. 물론 여기에도 조합 지도자의 부패나 운영의 실패 등등 많은 문제가 있다.
선진국의 소비자는 어떤 선택을 하든 위의 경우에 반드시 저개발국의 커피농민에게 도움이 된다. 어떤 문제점을 이유로 그런 노력들을 폄하해선 안된다. 너무 쉽게 타협하지는 말자. 그리고 많은 유혹을 물리치고 그런 선택을 하시는 한잔의 구매자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들이 선택이 가난한 아버지가 자신의 노동으로 아이를 기르고 교육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니까. 하지만 인증 받은 비싼 커피를 사 먹을 수 없는 보통의 소비자의 선택도 존중되어야 한다. 그 것도 그에겐 최선의 선택이므로.

6. 공정한 가격: 타다세 메스켈라의 경우

“Our hope is one day the consumer will understand what they are drinking. Consumers can bring a change if awareness is given to consumers. It is not only on coffee, all products are getting a very low price – and the producers are highly affected.”- Tadase Meskela

아디스아바바의 다음 날엔 우리는 에티오피아 커피산업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타다세 메스켈라를 만나기로 했다. 먼저 우리는 그가 대표로 있는 오로미야 농민조합에 가서 커핑을 하기로 했다.

오로미아 농민조합의 원래 아름은 Oromia Coffee Farmers Cooperative Union이란 긴 이름이고 줄여서 OCFCU라고 불린다. 1999년에 설립되었고, 대략 40만의 커피농민, 프로세서, 수출상들이 여기에 소속되어 있고 405개의 기초단위조합을 결합한 대표기구이다. 매년 7,000톤의 커피를 생산하고 4000만 달러를 벌어들여 그 수익의 70%를 농민들에게 돌려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https://www.oromiacoffeeunion.org/about-us/ocfcu/)

이 조합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밭떼기를 통해 농민의 수익을 착취하는 Middle Man(일명 하이에나라고도 불리는데 농사 시작기에 일정한 돈을 주고 밭떼기를 통하여 수익을 올리는 사람이나 회사를 말한다.)을 없앤 것이다. 조합은 수확, 프로세싱, 훌링, 보관 수출을 일관하여 처리하여 미들맨의 중간 수익을 줄여내고 농민에게 돌려준다.

우리는 오로미아 농민조합 사무실을 방문하여 커핑을 하였다. 커핑룸의 담당자들은 매우 숙련된 기술로 샘플을 볶아내고, 커핑을 준비하였다. 건물은 비좁고 허름했지만 Probat Sample Roaster를 갖추고 있었고, 그들 모두 능숙한 로스터이자 커퍼였다. 커피는 매우 우아하고 향기로웟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오로미아 농민조합은 아라비카만을 취급하며 매우 우수한 품질로 유명하다.

그 곳을 나와 우리는 타다세 메스켈라(Tadesse Meskela)를 만나러 갔다. 그는 진중한 중년의 신사였으며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타다세 메스켈라는 아디스아바바의 외곽에서 가난한 집안에 태어났다. 신발도 점심도시락도 없이 그는 2시간거리의 학교를 걸어 다녔다. 열심히 공부하여 대학을 졸업하고 에티오피아 농무부에서 근무했다. 그는 일본에 농민조합에 두 달간 연수 차 왔다가 농민조합 이야말로 에티오피아 농민들을 가난에서 구제할 시스템이라고 생각하고 1999년 오로미아 농민조합을 설립하였다. 그리고 그는 더 나은 커피값을 치러 줄 바이어를 찾기 위해 전세계를 돌아다녔다. 그는 지금 세계 공정무역의 상징이다.(https://blackgoldmovie.com/about-tadesse-meskela)

그의 감동적인 이야기는 2006년 영국인인 Nick and Marc Francis 형제 감독에 의해 ‘Black Gold’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어져 Sun dance Film Festival 등 여러 영화제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2007년 그의 다큐멘터리가 영국에서 상영되자, 그는 영국을 방문하고, 토니 블레어 총리와 총리관저에서 대화를 나누고 영화를 같이 관람했다. 또 타다세 메스켈라는 영국 가디언지와의 회견에서 ”이르가체페, 시다모, 하라르를 현재의 무역에선 파운드당 1.6달러에 팔 수 있다. 값이 깍여서 농민은 1.1달러를 받는데, 로스터는 원두를 파운드당 20-26달러에 팔고, 소매점에서는 1파운드 커피로 52잔의 에스프레소를 만들 수 있고, 그 값은 파운드당 160달러이다. 이 비율은 바뀌어야 한다. 우리 국민은 맨발에, 학교에 다니지도 못하고, 깨끗한 물도 없으며, 병원도 가지 못한다. 그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간다. 우리는 파운드당 4달러는 최소한 원한다. 그것 만이 공정하다” 고 말했다.

타다세 메스켈라와 에티오피아 정부는 국제적으로 상을 받은 세가지 종류의 커피의 상표권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으려 했다. 그러나 스타벅스는 이미 자신들은 Starbucks’Aid를 통해 많은 돈을 커피농민들의 물문제를 해결하는데 쓰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스타벅스 측은 ‘에티오피아가 국제가격보다 높은 가격을 받으려 한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에티오피아 정부와 미국과 유럽의 많은 사람들은 ‘에티오피아는 자선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공정한 값을 받아 생계를 유지하려는 것이다’라고 하며 에티오피아를 옹호했다. 이미 Green Mountain Coffee Roasters를 비롯한 많은 미국의 스페셜티커피 회사들이 공정거래를 받아들이고 있기도 했다. 이듬해 옥스팜은 오로미아 농민조합이 추진하는 새로운 생산, 업무시설 신축사업에 도움을 주었다. (http://politics.guardian.co.uk/development/story/0,,2001039,00.html)

우리 일행이 타다세 메스켈라를 만난 곳은 그의 사무실이었다. 비좁은 여느 사무실이었다. 에어컨도 없는 더운 곳에서 그는 정장을 차려 입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커피 가격과 거래방식에 대해 이야기했다. 달변이었고 당당했다. 그는 자신의 어린시절과 현재의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때 그는 에티오피아 농민들은 가축과 한 집 산다. 나도 그렇게 살았다고 했다. 그는 내게 Black Gold 시디를 주었다. 나는 밤새 그 시디를 보면서 무언지 모를 이유로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나도 대학생 시절 가세가 기울어 어떤 친척 어르신의 도움을 받아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그 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아들은 가난해도 아버지가 주는 돈으로 공부하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 그리고 내가 아비가 되어 기르면서 든 생각은 “세상의 모든 가난한 아비는 자신의 노동으로 번 돈으로 자식을 키울 때 가장 행복하다’이다. 타다세가 원한 것도 그것 아닐까? 그 영화에서 타다세 메스켈라는 선진국의 원조나 자선이 아니라 자신의 노동으로 가난하지만 생계를 유지하고 아이를 기를 수 있는 커피가격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 날 그는 새로 짓고 있는 공장에 가자고 이야기했다. 그는 공사중인 공장에 가서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 공장에는 생산시설, 사무공간 외에도 많은 방들과 넓은 홀이 있는 건물이 따로 있었다. 타다세는 그 건물에는 숙소와 식당, 병원이 들어설 거라고 했다. 무슨 방이 이렇게 많이 있냐고 하자, 그는 ‘우리 조합의 농민들은 차를 타지도 못하고 긴 시간을 걸어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들에게 묵을 방과 식사를 제공해야합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의료혜택을 받지 못합니다. 우리는 여기에 병원을 만들 겁니다’ 라고 말했다. 그에 대한 비난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만난 그 사람은 위대했다. 아니 그의 마음은 위대했다.

나는 그 후로도 여러 커피쇼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여전히 공정한 가격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와 만났을 때의 사진들은 핸드폰이 고장 나면서 날아간 것 같다. 에티오피아에서 그와 찍은 사진들을 찾으려 했으나 찾을 수 없었다.

7. 에필로그

아디스아바바를 떠나기 전날 나는 저녁이 깃드는 거리를 걸어 다녔다. 헌책방을 찾고 있는데 어떤 젊은이가 나를 안내해 주겠다 했다. 좀 꺼림직 했으나 그러자고 했다. 2킬로미터를 걸어 나는 헌책방에 도착했다. 론리플래닛 에티오피아 편을 한권사고 나는 그 젊은이에게 저녁을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아디스아바바대학 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고맙다고 했다.

그와 저녁을 먹으며 그는 자신의 보모님은 하라르 지역이라고 했고. 현재 돈이 떨어져 곤란한 지경인데 50달러를 빌려줄 수 있냐고 간곡히 부탁했다. 주소를 주면 갚겠노라 하며 자신의 연락처를 건넸다.

나는 생각했다. 그는 대학생이 아닐 수도 있고 다 거짓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이유도 조건도 없이 100달러 정도 줄 수 있다. 그가 며칠 간의 기아를 면할 수만 있다면 100는 제 역할을 다 한 것이다.

아디스아바바의 밤은 칠흑처럼 어두웠고, 태양은 뜨거웠다.

나의 마음도 칠흑처럼 어두웠지만,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야했다.  그때는